A. B. Simpson의 성령론과 성결교회
1. 서론
이 논문의 목적은 한국 성결교회와 깊은 연관이 있는 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C&MA)의 창설자인 Albert Benjamin Simpson의 성령론을 연구하려는 것이다. 심프슨은 웨슬리안-성결 그룹에 속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성결교회는 그 창립 초기부터 심프슨의 사상과는 밀접한 관계 속에 있었다. 카우만(Charles E. Cawman)이나 길보른(Ernest E. Kilbourne) 등이 비록 교단적, 교리적인 차이는 있었을지라도 미국 부흥운동의 열기 속에서 심프슨과의 연관이 깊었으며, 성결교회의 대표적 정기간행물인 <活川>지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서 심프슨의 글이 번역되어 실렸다. 심프슨의 Four-Fold Gospel은1) 그의 또 다른 저작들과 함께 성결교회 내에서 애독되고 있다.
심프슨의 성령론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변을 얻기 위해 필자는 우선 19세기 미국과 영국에서 일어났던 성령운동의 여러 조류들 가운데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흐름을 살펴 보고, 그리고 이 흐름 속에서 심프슨의 성령론이 위치한 곳이 어디인지를 살펴 볼 것이다. 이어서 심프슨의 성령론이 형성되고 발전된 모습을 살펴보며, 그의 성령론이 지닌 핵심이 무엇인지를 가려낼 것이다.
심프슨의 성령론은 그동안 한국 성결교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그리고 ‘성결교회에 과연 성결이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고민하는 성결교회를 위해 심프슨의 성령론은 무언가 조력할 메시지가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답변을 얻고자 우선 한국 성결교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그의 저술들의 내용을 다룰 것이다. 그리고 심프슨의 성령론에 대해 언급한 성결교회의 몇몇 신학자들의 글을 통해 비평을 하고자 한다. 결론에서는, 심프슨의 성령론이 지닌 특징들을 분석하면서, 이를 통해 성결교회의 ‘성결성 회복’을 위한 유익한 교훈이 있는지 살피고자 한다.
2.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
미국에서는 남북전쟁(1861-65) 전, 특히 1840년경에 이르러서 완전주의(perfectionism)가 사회적, 지성적 그리고 종교적 삶에 있어서 가장 중심 되는 주제가 되어갔다.2) 그러자 미국 개혁파 전통에서 새로운 형태의 완전주의가 Charles G. Finney와 Asa Mahan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피니는 개인적인 특별한 체험을 거친지 몇 년 후, 두 번째 축복을 체험하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능하다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와 그의 오벌린 대학(Oberlin College) 동료들은 이른바 ‘오벌린 완전주의’(Oberlin Perfectionism)라고 불리는 가르침을 전하기 시작했다.3)
1857-58년의 부흥운동 기간에는 장로교 목회자인 William E. Boardman에 의해 「더 높은 그리스도인의 삶」(The Higher Christian Life)이 출판되었는데, 이 책은 특히 Methodists 전통 이외의 사람들에게 성결의 은혜를 해석할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4) 그는 개혁주의 전통의 긍정적인 측면,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성화를 강조하였다. 거듭난 신자가 그리스도께 대해 온전한 헌신을 하고 난 후에는 ‘그리스도께서 거하신다는 의식적인 증거’(a conscious witness of Christ's indwelling)를 얻게 된다. 그는 이 두 번째 회심을 성령세례라고 불렀다.5)
이렇게 해서 시작된 ‘더 높은 그리스도인의 삶’(the Higher Christian Life) 운동에는 보드맨 외에도 Robert Pearsall Smith와 Hannah Whitall Smith 등이 크게 활약하였다. 비록 그들은 미국인이었으나, 그들의 영향력은 영국에 크게 미쳐서 마침내 Keswick 운동에도 큰 감화를 주었다. Keswick 운동의 중요한 지도자인 Evan Hopkins는 죄의 뿌리를 죄성이 아닌, 악에 대한 경향성으로 설명했다. 이같은 홉킨스의 견해를 Handley Moule이 다소 온건한 형태로 추종하였다. 이같은 초기 Keswick의 죄에 대한 이해가 후기에 와서는 세대주의적 영향으로 F. B. Meyer와 같은 이들을 통해 육체적 전적 부패성과 죄성의 억제설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전되어졌다.6)
1865년에 전쟁이 끝나고 1870년대에 접어들자, 미국은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현상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즈음에 미국 개신교는 또한 영국 등지로부터 건너온 성서의 고등비평과 다윈주의에 노출되어 크게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특히 남북 전쟁 이후 임박한 종말론 사상이 팽배해지면서,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대대적인 성령 강림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신념이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전쟁 이후의 성령운동은 이같은 도전과 요청에 직면하여, 전쟁 전의 성령운동이 인간의 의무와 능력을 강조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인간의 능력에 대한 비관적 견해와 함께 특별히 성령의 능력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지게 되었다. Handley C. G. Moule, F. B. Meyer 그리고 Andrew Murray와 같은 케직 운동의 지도자들은 1870년대 이후 영국인의 영적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Asa Mahan이 1870년에 발행한 「성령세례」(The Baptism of the Holy Ghost)는 북미에서 큰 반응을 일으켰는데, 이 책은 그가 전에 영향을 받은 오벌린 완전주의 등에 기초한 것이었다. 마한의 가르침 속에서 특징적인 것은 “사람이 구하지 않으면 성령을 받을 수 없다”7)는 견해였다. 그리고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봉사와 거룩한 삶에 있어서의 능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피니도 마한과 마찬가지로, 그의 후기 사역에 있어서 성령세례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8) 초기에 그는 오벌린 완전주의의 선구자로서 참 신자에게 나타나야만 할 변화된 윤리적 삶에 강조점을 두었다. 그런데 그의 후기 사역에서는 그 중심점이 우리의 자유의지와 믿음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성결을 부여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옮겨갔다. 그래서 모든 신자들은 성령세례를 받아야만 하고, 이 은혜는 신자가 자신의 의지를 성령의 인도와 지도와 영향과 통치하심에 온전히 헌신하게 될 때 주어진다고 했다. 피니의 성령론이 가장 완숙하게 나타난 것은 그의 마지막 저술인 「능력의 부여」(The Enduement of Power)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심을 이루는 핵심은 신자는 성령세례의 능력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인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을 성취하게 된다는 것이었다.9)
1870년대 이후부터 미국의 대중복음전도에 가장 두각을 나타낸 인물로서 Dwight L. Moody를 들 수 있다. 부흥운동가로서, 비록 신학적인 깊이는 없으나, 그의 저술 속에는 거룩한 삶과 특히 봉사의 능력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타난다.10) 웨슬리안-성결 그룹과는 달리, 무디는 성결이 순간적인 체험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애 전반에 걸친 지속적인 신앙의 열매라고 보았다. 그래서 성령세례와 성결을 연관시키는 어떠한 종류의 이론도 그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11) 무디는 자신이 1881년에 저술한 「은밀한 능력」(Secret Power)에서 신자는 봉사의 능력을 얻기 위해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한다고 강조했다.12)
무디에 의해서 강조되어지던 성령의 능력에 대한 가르침을 신학적으로 체계화한 이는 Reuben Archer Torrey이다. 무디는 자기가 인도하던 부흥운동에 자주 토레이를 초청하여 그에게 성령세례에 대해서 가르치도록 하였다.13) 토레이는 성령세례가 명확한 체험이라고 강조하면서, 신자들은 자신이 성령세례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14) 그는 확언하기를, “성령세례는 죄로부터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봉사의 능력을 위한 목적을 가진다”15)고 했다. 그는 개혁파적 전통을 따라 죄성이 순간적으로 제거된다고 하는 관념은 거절했으나, 성령의 사역이 죄로부터 정결케 되는 일을 돕는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았다. 특히 그는 신자가 성령세례를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열매는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그런가 하면 무디나 토레이와는 달리, Adoniram Judson Gordon은 성령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 신자들을 그리스도와 연합케 하고, 또 그들에게 그리스도와 연합된 유익을 깨닫도록 하는 일이라고 보았다.16) 기독교연합선교회(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의 창시자인 A. B. Simpson의 성령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이들은 Boardman과 Gordon 등의 ‘더 높은 그리스도인의 삶’ 노선의 개혁파 성령운동 그룹이다.17) 그런가 하면 심프슨은 케직의 지도자들과도 믿음과 강단을 활발히 교류하곤 하였다. 예를 들어서 무디와 심프슨이 함께 개최했던 대회에서 Meyer, Murray 같은 케직의 지도자들이 설교하곤 했던 것이다.18)
이처럼 심프슨의 성령론은 넓게는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전통에 속해 있으며, 더욱 구체적으로는 보드맨이나 고든과 함께 ‘그리스도의 전인적 통치’로서의 성령세례를 강조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 말은 심프슨의 성령론 노선이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정화와 능력’ 중심이나 또는 무디나 토레이 등의 ‘사역의 능력’(power for service)에 중점을 둔 성령세례론보다는 좀더 기독론에 근접한 ‘그리스도와의 연합’ 모티브에 충실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3. 심프슨의 성령론 형성과 발전
심프슨의 일가는 원래 스코트랜드 사람들이었는데, 그는 1843에 9남매 중의 넷째 아들로 출생했다. 그의 부모의 신앙은 대단한 감화력을 심프슨에게 주었다. 그의 아버지는 언제나 마음의 평강을 가지고 결코 격정을 내거나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이 없었으며, 그의 어머니는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앙의 정서와 시적인 감동으로 어린 심프슨에게 기도를 가르쳤다. “내 나이 6살이 채 넘지 않았을 때 나는 마치 예수께서 인격으로 실제로 현존해 계시는 것처럼 예수께 모든 것을 말씀드리곤 했다.”19) 심프슨은 어릴 때부터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에 대한 훈련을 부모로부터 감화 받은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장로교 구파의 장로였고, 소요리문답(the Shorter Catechism)이나 예정 교리 그리고 청교도적 신앙 원리를 잘 준수하고 있던 경건생활에 철저했던 사람이었다. 심프슨은 어릴 때부터 청교도 신학자들의 글들, 그리고 소요리문답의 질문과 답변 등에 의해 신앙을 훈련 받았다. 후에 심프슨의 제 이차적 축복의 교리로서의 성령세례론을 지탱해 준 것도 역시 청교도의 충만한 확신 교리의 영향이었다.20)
14살 때 자기 형제가 권총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고를 당한 후, 심프슨은 장래에 목회자가 되기로 작정하고 이를 위해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심한 질병으로 시달림을 당하게 되었고, 그러던 중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나는 믿음이 없이 증거를 찾고 있었는데, 그 순간부터 나는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성령께서 보혈에 대해 응답하시고 또 나에게 대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21)
Knox College에 입학한 후에도 그에게는 성령의 체험이 없었다. “나의 종교생활은 기쁨이나 주님과의 교제가 별로 없는 단순히 의무적인 것이었다. 한 마디로, 나의 영혼은 성결하지 못했고, 아직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와 성령의 세례의 비밀을 알지 못했었다.”22) 그는 1865년에 대학을 졸업하였고, 같은 해에 목사 안수를 받고 낙스교회에 부임하였다. 1870년 그가 교회를 옮겨 Louisville에서 목회할 때, 자신의 영적인 갈급함을 채우고자 Moody의 집회에 참석였고, 이어서 Boardman의 ‘더 높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Whittle과 Bliss와 같은 부흥사들의 영향 하에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23) 휘틀과 브리스는 심프슨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과 사역에 영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고, 심프슨으로 하여금 성령으로 충만케 되는 경험을 추구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이같은 심프슨의 성령론은 ‘그리스도의 전인적 통치’로서의 성령세례를 강조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 노선은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에 근거를 두었지만, Moody나 Torrey와는 달리, 성령세례의 주된 목적을 그리스도에 의한 전인적 통치에 둔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이 노선의 대표적인 인물들은 William E. Boardman, Adoniram Judson Gordon 등의 ‘더 높은 그리스도인의 삶’ 지도자들, 그리고 F. B. Meyer, Andrew Murray와 같은 Keswick 운동의 지도자, 그리고 심프슨 등을 들 수 있다.24) 심프슨은 그리스도께서 신자 안에 이루어주시는 성결은 성령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신자 안에 오시는 체험이며, 성결의 체험을 통해 신자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능력과 승리가 주어진다고 하였다.25)
심프슨은 성결과 성령 체험의 거룩한 동력은 성령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성령의 세례는 주 예수와 우리의 연합과 동시적으로 발생한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와 떨어져서 활동하지 않으신다. 그리스도께서 지니신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분이 성령의 사역이다.”26) 심프슨도 역시 ‘성령세례’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였다. 물론 그가 이 말을 사용할 때, 그것은 단지 거듭난 신자 속에 성령께서 자동적으로 거하신다고 하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은 신자가 온전한 헌신을 통해 특별하게 영접해야만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27) 심프슨은 성령세례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전인적인 통치’임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에게 분여된 세례란 무엇인가? 종종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그분 자신과는 다른 그 무언가를 가지고 세례주신다고 하듯이 들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영 향이나 느낌이나 능력 같은 종류로 말이다. 그러나 사실은 성령 그 자신이 바로 세례이다 (the Spirit Himself is the baptism).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베푸시고, 그 세례는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성령 안에 또는 성령과 함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번에 영원히 성령세례가 주어지고, 그때로부터 성령 그분께서는 우리의 내주하시는 생명(our indwelling life)이시다.28)
이처럼 심프슨의 성령론의 핵심은 명백하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해서가 아니라 성화된 신자 속의 그리스도의 온전한 내주에 대해서 가르쳤다. “성결은 인간의 자기 개발이나 완전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함이다.”29) 심프슨의 성결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성결은 죄에서 분리되는 것이다. (2) 성결은 또한 하나님께 바치는 것(dedication)을 의미한다. (3) 성결은 하나님의 모습과 일치하게 되는 것을 내포한다. (4) 성결은 또한 하나님의 모습에 일치한 동시에 그의 뜻에 일치함을 의미한다. (5) 성결은 하나님과 온 인류를 향한 사랑, 최고의 사랑을 의미한다.30)
심프슨은 누구든지 성결 체험을 하고 난 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까닭은 그가 주님을 계속 붙잡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지속적인 주님과의 동행하는 삶이 지속적인 성결을 보장해 준다고 보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지침을 소개하였다; (1) 그가 우리 안에서 걸어가시도록 그를 받아들여야 한다. (2)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의 자각 속에 불붙고 우리 마음에 도장 찍히듯이 남겨지기까지 그의 생애를 공부해야 한다. (3) 끊임없이 그의 모습을 우러러 보고, 그 모습을 우리 행동의 하나하나의 세밀한데까지 적용해야 한다. (4) 그대 자신에게서 실패에 직면해도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5) 끝으로, 성령께 구하자.31)
이와 같은 성결에 대한 심프슨의 입장은 개혁파 ‘더 높은 그리스도인의 삶’ 노선과 비슷하였다. 즉, 죄성의 정화 차원을 강조한다거나 성결이 신자의 영혼 속에 이루어진 어떤 구체적인 상태라고 보기보다는, 내주하는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과 복종의 삶을 통해 그분이 준비하신 성결의 은혜를 적용하는 것이 곧 성결이라고 본 점이다.32) 이처럼 그는 성령의 사역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대속사역 사이의 관계성을 크게 강조를 하였다. 특히 성령의 능력을 통한 신자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indwelling Christ)에 대한 그의 강조가 돋보였다.33)
성령세례의 능력을 바탕으로 정력적으로 사역한 심프슨은 복음 전파에 있어서 큰 열매를 거두게 되었다. 그는 점차 세계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되었고, 마침내 1887년에 the Christian Alliance를 조직하였다. 이 연합회에 가입한 교회들은 초교파적으로 구성되었는데, 사중복음(four-fold gospel)을 강조하는 공통적인 신앙을 갖고 있었다. 1889년에는 심프슨이 캐나다에서 International Missionary Alliance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두 개의 독립된 단체가 1897년에 연합하여 마침내 C&MA를 구성하여 심프슨이 초대 회장을 담당하였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힘차게 세계 선교를 감당하는 큰 교단으로 성장하게 되었다.34)
4. 성결교회와 심프슨의 성령론의 연관성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첫 번째 핵심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모티브에 있다. 오벌린 완전주의가 너무 인간적 차원에 맞춘 것에 불만한 Higher Life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성령론이라든가, Keswick에서 시작된 성결운동이 신자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강조한 것 역시 그렇다. Gordon이나 심프슨의 강조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두 번째 핵심으로서, Mahan이나 Moody 그리고 Torrey에게서 그 전형을 볼 수 있는 중생한 자가 위로부터 받는 능력으로서의 성령세례 관념을 더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핵심은 내한(來韓) 선교사들을 통하여 초기 한국교회 부흥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한국 성결교회의 창립은 동양선교회(Oriental Missionary Society)의 활동과 끊을 수 없는 관련을 지니는데, 이 동양선교회를 창립한 카우만(Charles E. Cawman)과 길보른(Ernest E. Kilbourne) 등이 선교사로 헌신하게 된 동기 중에는 심프슨의 집회로부터 받은 감화가 크다. 심프슨은 개혁파 성령운동가나 웨슬리안 성결운동가들을 구분하지 않고 폭넓은 교제와 사역의 공조를 이루곤 하였는데, 한국 성결교인들에게도 심프슨의 글은 이질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에 대해 박명수는 설명하기를, 대부분의 초기 한국 성결교인들은 개혁파의 ‘더 높은 그리스도인의 삶’ 노선의 심프슨이 분명히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지도자였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하였다.35)
1928년부터 1932년까지 A. B. Simpson의 성령론이 <활천>에 연재된 것은 의미가 있다.36) 성령의 내주에 대한 심프슨의 글이 기록되기를, “그는 죄깊은 마암에 新生命이 드러온 거인대 이는 신생명이 녯것을 逐出하고 그곳을 점령한다. 이는 自我의 생명을 개선한 것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순결하여져서 죄를 범할 수 없는 신생명 즉 하나님의 聖生命이 우리에게 부여되는 일이다”37)라고 하였다. 또 이 새생명은 신자의 죄성과는 관계 없이 성숙되어 나간다는 것이다; “이는 死中의 생명이 부패중의 순결이다. 이는 그 살아잇는 흙의 여하에도 관계치 안코 또 그 더러움에도 혼잡하지 않이 하는 것이다. 영혼 중에 잇는 성결의 생명도 맛티 이와 같다. 이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새움과 같이 하나님의 뿌리로부터 나와서 우리의 죄깊은 성질과는 하등의 더부름이 없이 오직 이는 天의 뿌리로부터 나와서 그 자신의 순결과 풍부를 가지고 우리들 안에 생장하야 드디어 聖別된 天的 생애의 풍부한 열매를 맺기까지 성숙하는대 니른다. 이는 엇던 의미든지 자기 자신의 생명이 않이라 하나님 자신의 內住의 임재와 그 깨끗한 것임을 感한다.”38)
특히 성령의 임재를 늘 인식함의 중요성을 강조한 심프슨의 글이 소개되었다; “성신을 힘입어 행함을 일반적으로 말하면 우리들의 생명, 神과 魂과 身을 위하야 성신께 의뢰하는 습관의 계속이라고 말할 수 잇다.”39) “성신을 힘님어 행함은 우리 안에 聖臨在로 내주하시는 성신을 인식함이다. 우리들은 종종 성신의 성임재를 구한 뒤에라도 성신은 우리를 속이시는 이와 같이 취급하며 또 저가 멀니 게시는 이와 같이 멀니 저에게 향하야 부르짖는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지 말고 우리에게 임재하시는 성신을 인식하며 현재 나에게 내주하야 게시는 친구와 같이 저에게 모든 것을 말할 것이다. 그리하면 성신은 언제든지 항상 우리들의 인식에 응답하시와 저 녯적 하나님의 성임재와 같이 말삼하실 것이다.”40)
성결교회가 1961년에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와 예수교대한성결교회(예성)로 분열된 이후, 예성에서는 1973년 또 한 차례의 분열의 진통을 겪게 되었다. 분열 후 혁신 측 예수교대한성결교회에서는 웨슬리안-성결 단체인 Inter-Denominational Holiness Convention와 제휴했으나, 후에는 개혁파 노선인 C&MA와의 제휴를 갖게 되었다. 이때부터 심프슨의 글들은 예성에서 친숙히 다루어지게 되었고, 분열 16년이 지난 1988년에 예성은 다시 하나로 합동했으며, 하나된 예성은 C&MA를 공식적인 자매결연을 통해 새롭게 맞이하게 되었다.
5. 심프슨의 성령론에 대한 성결교회 신학자들의 비평
서울신학대학 교수였던 임종우41)는 1958년 3월호인 291호부터 1959년 3월호까지 12회에 걸쳐 ‘성결의 복음’을 연재하였다. 임종우는 성결을 성결의 시초인 신생(新生)과 완전한 성결로 나누었다.42) 그리고 그는 “성신세례의 역사가 이천년전에 일어나고 지금은 그러한 역사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자들도 많으니 말세의 징조이며 성경을 곡해하고 불신한데서 나오는 현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43)고 개탄하였다. 그는 심프슨의 성결론에 대해서 평하기를, 웨슬리안 성결관과 상이점과 상통하는 점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보았다.44) 이같은 그의 글은 아직 비판적 성결론이 무르익지 않았던 당시로서는 학구적으로 주목받을 만한 내용이었다고 본다.
성결대학교의 명예교수인 이성주는 특히 C&MA의 창시자인 심프슨의 노선은 웨슬리안 성결운동 노선과는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는 심프슨이 가르친 성화(sanctification)의 교리는 한국성결교회에서 주장하는 성결론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전제하고,45) 심프슨의 성결론은 인간의 노력을 무시하는 성결론이며 또한 죽기 전에 이 세상에서 성취될 수 있는 성결론이 아니라고 보았다.46) 특히 심프슨의 성결론은 죄의 내주를 육신에 두지 않고 그 영혼 가운데 둠으로써, 육신의 죽음으로도 죄를 제거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고 비판하였다.47) 이같이 이성주가 심프슨의 성결론 비판의 강도를 높이게 된 것은, 1988년 이후 C&MA와 예수교대한성결교회와의 결연이 공식화됨에 따라 전통 성결교회 교리에 혼선이 빚어질 것을 우려한 처사였을 수도 있다.
성결대학교의 명예총장인 성기호는 심프슨의 성결론이 원죄제거설이나 원죄억압설의 어느 한 편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고, 성결이란 바로 ‘그리스도 자신’(Christ Himself)인데 신자 안에 오신 그리스도를 통해 죄와 자아에 대한 지배와 능력을 강조하였다고 보았다. 즉, 성결의 단계에서 예수 충만을 통해 죄와 자아를 지배해야 한다는 것은 성결을 체험한 신자에게 원죄가 존재함을 인정하기 때문에 케직 견해와 유사하지만, 원죄가 억눌려 있는 상태라고도 말하지 않음으로 심프슨의 견해는 ‘예수충만설’(the Theory of Fullness of Jesus)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고 평하였다.48)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심프슨의 성령론과 한국 성결교회와의 연관성은 매우 크다. 기성과 예성으로 분열되기 이전이나 이후에도 심프슨의 글들은 전형적인 웨슬리안 성결론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한국인 독자들에게 읽혔다. 적어도 심프슨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신학적 비평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런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이것은 심프슨의 성결에 대한 설명이 개혁파 노선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인 성결 체험 이후의 지속적 성숙의 차원을 해설하기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간주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순간적 성결과 죄성제거설에 대한 교리적 교훈이 지속되었으나, 성결 체험 이후의 영적 관리에 대해서는 자칫하면 도덕주의로 빠져들 위험성이 많았다. 이때 심프슨의 지속적인 그리스도와의 교제에 대한 메시지가 순간적 성결 체험 이후의 영적 관리에 대해 큰 도움을 주었다고 본다.49)
6. 결론
심프슨의 성령론은 초기 성결교회로부터 현재까지 저술이나 교류를 통해 성결교회와 상당한 관련을 갖고 있는데, 특히 심프슨의 C&MA는 현재 예수교대한성결교회와는 더욱 밀접한 결연관계에 있다.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심프슨의 성령론은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에 속한 것이요, 성결교회의 성결론은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조류에 속해 있다. 이처럼 심프슨의 성령론이 성결교회 성결론과는 뚜렷한 강조점의 차이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성결교회에 매우 친숙하게 다가온 것 또한 사실이다. 필자는 본 연구를 통해 심프슨의 성령론이 지닌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살필 수 있었다.
1) ‘죄성제거설’이 아닌 ‘예수충만설’의 성령론이다.
심프슨의 성령론은 웨슬리안 성결론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인 ‘죄성제거설’(Eradication)과는 대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냐하면 심프슨은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 전통의 인물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전인적인 통치’로서의 성령세례를 강조하기 때문에, 죄성제거설이 아니라 ‘예수충만설’50)의 입장을 보인 것이다.
2) 성령론의 소극적인 면보다는 적극적인 면을 강조하였다.
‘죄의 근절’이나 ‘죄의 억압’과 같은 죄성을 다루는 성령론의 ‘소극적 차원’보다는, 심프슨이 지닌 관심은 성령론의 ‘적극적 차원’을 더욱 강조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점에서 심프슨은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사역의 능력’(power for service) 모티브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겠으나, 그러나 좀더 엄밀히 말한다면 그는 ‘정화’나 ‘능력’보다는 ‘그리스도의 전인적인 통치’의 모티브에 접근해 있는 것이다.
3) 순간적 성결의 체험과 함께 지속적 성결의 교훈이 강조되었다.
심프슨은 그의 「사중의 복음」 제 5장에 ‘하나님과 동행’(The Walk with God)의 내용을 첨가하였다.51) 이는 하나님과 쉬지않고 동행하는 삶이야말로 실제적인 성결을 구현하게 되는 길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고 본다. 지속적 성결의 길, 그것은 지속적인 그리스도의 인격적 통치와 충만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4) 선교지향적인 역동성을 지닌 성령론이다.
심프슨의 성령론에는 선교지향적인 역동성이 강조되었다. 조귀삼은 심프슨의 성령론을 포함한 사중복음의 핵심이 기독론에 있다고 보면서, 선교의 주체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인간의 구원을 이룬다는 그리스도 중심의 선교신학을 이루게 되었다고 보았다.52)
5) 기독론 중심의 모티브와 목표를 지닌다.
심프슨은 죄성억압설이나 죄성제거설보다는 그리스도 중심의 성령론에 중점을 두었다. “오늘날의 남녀들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순간으로서의 성결이 아니라 살아계신 인격으로서의 그리스도이다.”53) 그는 개혁파 성령운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with Christ)의 관점을 중시하였다.54) 그러면 심프슨의 성령론이 성결교회의 성결론에 주는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점인가? 우선 심프슨이 성결의 순간성 뿐 아니라 지속성 역시 제시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고, 또 하나는 성화의 목표로서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모티브에 의한 하나님 형상의 회복을 강조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면 성결교회 성결론에서 자칫 간과되기 쉬운 이러한 두 가지 중요한 주제들에 대해서 현대의 성결교회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첫째, 한영태는 한국 성결교회의 성결론이 순간적인 성결 체험의 차원만이 아니라 성화의 점진적인 면에 대해서도 강조되어야만 한다고 강조하였다.55) 성결교회의 성결론은 그 경험의 순간성이 강조되지만, 그 실질적인 내용은 그 경험 이후 지속적으로 범죄의 유혹으로부터 승리하는 삶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지속적 승리의 길은 성령의 지속적인 인도와 통치를 받는 삶에 있다(갈 5:16-26). 이 점에 있어서 심프슨의 성령론은 한국 성결교회가 전통적으로 순간적 성결만을 강조한 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지속적 성결의 교훈을 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심프슨 성령론의 기본 골격이 개혁주의적인 것을 고려한다면, 성결교회는 차라리 웨슬리안 전통 속에서 지속적 성결의 교훈을 찾아 적용함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존 웨슬리의 그리스도인의 완전론에는 순간성과 지속성에 대한 교훈이 병행되어 있기 때문이다.56)
둘째, 현대의 성결교회에는 이제 성령론의 적극적인 차원을 더 많이 강조해야 할 것이라는 인식이 일고 있다. 박명수는 성결교회의 성결론이 성결의 소극적인 차원인 ‘죄성의 제거’보다는 적극적인 차원인 ‘하나님 형상의 회복’에 대한 강조를 더 많이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57) ‘하나님 형상의 회복’으로서의 성화의 이상을 강조하는 일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며 또 교회사적으로도 가장 영속적인 복음적 성령운동의 모티브이다.58) 현대의 웨슬리안 성결론의 중요한 경향성 중에는 명백하게 하나님 형상의 구현으로서의 ‘그리스도 닮기’(Christlikeness)를 목표하고 있다는 점도 역시 주목할 점이다.59) 성결교회 성결론의 근본적인 역동성이 ‘죄성제거설’에 근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와 함께 그 궁극적인 목표로서의 ‘하나님 형상의 회복’에 대한 적극적인 성화의 메시지가 고조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19세기 말 영국과 미국의 성령운동가들은 뜨거운 부흥운동의 일치와 교류의 열기 속에서, 비록 교리적, 교단적 노선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서로가 지닌 전통의 장점들에 참여함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들의 활동은 단지 자국 내의 부흥운동에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세계선교를 향한 능력으로 확산되어, 부흥운동을 통해 헌신된 선교사들을 통해 마침내 한국에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저마다 지닌 교단과 교리 노선에 입각한 성령론 논쟁으로 인해 피곤하고 또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현대의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잎만 무성한 성령론 논쟁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 부흥과 성숙의 열매를 가져올 복음적 성령의 능력이다. 이러한 역사적 요청 속에서 성령 체험과 그 능력을 강조하는 성결교회는 복음적 순수성과 역사적 전통성을 지닌 ‘성결의 복음’을 더욱 깊이 연구하고 힘있게 전파하는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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